매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주문이 있습니다. "산미 없는 걸로 주세요."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저는 조금 망설입니다. 손님이 피하고 싶은 그 맛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맛은 사실 산미가 아니라서.
우리가 싫어한 건 산미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커피의 신맛이 미움받게 된 데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오래 묵은 원두, 강하게 볶고 오래 내려둔 커피에서 나는 시큼하고 떫은 맛 — 그것이 오랫동안 "신 커피"의 기억으로 쌓였습니다. 그 기억을 기준으로 보면 산미를 피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산지에서 갓 익은 커피체리를 따서 입에 넣어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잘 익은 체리는 시지 않습니다. 단단한 단맛 속에 과일의 밝은 기운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말하는 산미는 이쪽입니다. 자두를 베어 물었을 때, 잘 익은 귤을 까먹을 때의 그 생기.
산미는 산지의 좌표입니다
고도 1,800m의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와 2,000m의 에티오피아 게데오는 같은 "신맛"이라는 단어로 묶기엔 너무 다른 산미를 보여줍니다. 한쪽은 백복숭아처럼 둥글고, 한쪽은 자몽 껍질처럼 또렷합니다. 산미를 지우는 일은 이 좌표를 지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자란 커피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로스팅으로 산미를 눌러 없애는 대신, 그 산미가 가장 달게 표현되는 지점을 찾습니다. 매주 커핑 노트를 다시 쓰는 이유입니다.
취향에는 위계가 없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산미 없는 커피를 좋아하는 취향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묵직하고 고소한 커피의 위로는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 매장의 도원 블렌드가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다만 "산미 = 나쁜 맛"이라는 등식 하나만 내려놓으면, 커피라는 음료가 가진 지도가 두 배쯤 넓어집니다. 그 지도를 함께 걷고 싶을 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커피 산미는 원두가 상한 맛인가요?
- 아닙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산미는 갓 익은 과일이 가진 자연스러운 유기산의 맛입니다. 상한 신맛은 결점두나 과추출에서 오는 시큼함으로, 밝은 산미와는 전혀 다릅니다.
- Q. 산미 없는 커피를 좋아하면 잘못된 건가요?
- 전혀 아닙니다. 취향에는 위계가 없습니다. 등식 하나("산미 = 나쁜 맛")만 내려놓으면 같은 원두에서 더 넓은 스펙트럼을 만날 수 있습니다.
- Q. 산미가 부담스러운데 어떤 원두부터 시작할까요?
- 허니 프로세스나 내추럴 가공처럼 단맛 비중이 큰 원두부터 권합니다. 부룬디 카얀자 허니가 좋은 출발점입니다.